00.

거짓말처럼 감기에 걸리고. 출근하는 동생을 보내고 다시 침대에 기어들어갔다가 알람도 맞춰두지 않고 든 아침잠 후에 커피 한잔을 내려서 발코니에서 바깥구경하기. 벌써 잎을 다 드러내 바싹 마른 검은 가지를 보이는 나무와 곧 그렇게 될 나무들을 보다가 그것보다 한참 작은 사람들이 움직이는걸 보다가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 그 움직임에 감탄하면서 커피를 한잔 더 내려마시고. 아파서 그래 아파서 하는 핑계를 대보고.




01.

동생과 함께 지낸지 요 몇달동안의 감상. 원래도 각자 개인의 생활을 존중하자는 건 가족중에서도 제일 잘 맞는 편이었던터라 집에 있어도 별로 부딫힐 일 없이 원래의 생활과 큰 차이 없는 밋밋한 생활을 보내다가도 이런걸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들게된다. 혼자 산다면 절대 안해먹을 부대찌게같은 음식들을 하면서, 냉장고에 들어가있는 김치(세상에)통과 엄마가 바리바리 싸다준 햇반과 김같은걸 보면서. 언젠가 mbti를 하면서 어떻게 하나도 같은 게 없을수가 없냐고 깔깔 웃었는데 어쩜...

박스채로 쌓인 햇반을 보면서 니가 다 먹어 하면 완전 땡큐지 라고 하는 동생님. 퇴근에 맞춰 동네 마트에서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도 어느 치즈를 살까에 한참 논의하다가 결국은 동생이 좋아하는 치즈를 골라 넣고 툴툴거리고 있노라면 어휴 소리를 입밖으로 내고는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오는 깜찍한 짓을 한다. 미안 사실 고트치즈는 내가 따로 샀어. 저 먹으라고 하지도 않는데 사는 것 조차 싫어할건 뭐람.




01-b.

그래도 보통으로 먹던대로 줘도 잘 먹기는 한다. 소시지를 자르다가 얼굴이 있어! 하고 찰칵 사진을 찍기.



02.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대화의 폭이 좁아지고 주변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외의 모든것에 미지근해지고 이런 모든것들이 너무 당연하다는 사실이 좀 시시하고 재미없고 요즘의 나는 좀 많이 재미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식물처럼 집에만 있어서 그런게 아니겠냐는 말을 하고는, "빛이라도 많이 받아야 할텐데"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라서 내 끄덕임을 들을 수도 없을텐데도- 비가 오는 계절이잖아, 그래서 그런가봐. 또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내 변명에도 "글쎄," 가차없다. 좀 이런 류의 사람이 인생에 필요한것도 맞는데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입을 다물거나 말을 돌려버리는 어른으로 자라버렸으니 어쩌겠어. 그마저도 그러려니 하는 정말 그냥저냥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재미없단 소리를 들어도 유죄다.



03.

올 초 2월 이후로 한번도 비운적이 없은 손끝. 가을이니까 레드 앤 블링. 내 맘이야.




04.

재미없는 요즘에 유일하게 재미있는거 하나. 가 아이돌이냐며 또 비웃지만 어쩌겠어요? 지금까지 좋아했던 모든 아이돌이 얘를 만나기 위해 있던거야 같은 소리마저 하고있다. 저 끝이 까슬하면서도 부들부들할거같은 직모머리와 흘렁한데 어깨부분만 판판해진 등판을 보면서... 올해의 제일 잘한 소비는 에어랩도 아니고 마스크도 아니고 토스터기도 아니고 이진혁 팬쉽이라고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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